욥 34:4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엘리후의 기상이 가상했지만 그 역시 알지 못하는 부분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음에 대해선 무지했다. 본문에는 그의 과욕이 잘 드러난다. 상식적 열정이 하나님의 섭리를 앞서 가려버린 것이다. 정의와 선을 잘 가려내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영역은 깊고 무한하며 높기까지 하다. ‘우리 끼리’ 알아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어느 신학자는 오늘날 교회에 갈등이 많은 이유는 옳은 말을 하되 덕이 없이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욥을 찾은 이들은 다 알지도 못한 채 덕도 구비하지 않은 취약점을 드러낸다. 욥과 그들에겐 말 보다도 ‘오래 참음’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시적 은총이 필요했다. 고통의 의미를 권선징악의 창으로만 보려했던 과잉해석도 문제였다.
이는 오늘날 유대교인들을 여전히 가두고 있는 왜곡의 프레임이기도 하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은 자이고, 저주받은 자는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다. 이런 관념은 비신자들에겐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다. 우리가 가려내고 우리끼리 알아보자는 말 역시 선악과의 독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정의와 선을 가려내는 일은 우리끼리 할 일이 아니다. 겸허한 심령으로 성령님의 빛을 의지해야 하는 일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써 마음가짐을 다시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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